호떡아빠의 여행일지 #5
하노이 한인 병원 방문기, 그리고 부대찌개
일주일째 멈추지 않는 기침
하노이 아홉째 날, 저는 병원에 가기로 했어요. 기침과 가래가 거의 일주일째 멈추지 않았거든요. 전날 밤에도 기침 때문에 잠을 많이 설쳤습니다. 특히 그 전 이틀은 이러다 큰 병이 되는 건 아닌가 싶어 꽤 불안했어요.
사실 기침 말고도 며칠째 자꾸 가렵고 불편한 곳이 있었어요. 하노이 호수 동네 호안끼엠의 약국에서는 곰팡이라며 바르는 약을 줬는데 영 낫는 것 같지 않았고요.
다행히 숙소에서 차로 20분쯤 걸리는 미딩이라는 동네에 한국 의사 선생님이 있는 병원이 있었어요. 동남아에서 차를 부르는 앱, 그랩으로 차를 불렀습니다. 가는 차 안에서도 기침이 멈추지 않아서 결국 마스크를 꺼내 썼어요. 머릿속에는 심각한 것만 아니었으면 하는 생각뿐이었죠.


3층 킴스 클리닉, 곰팡이가 아니라 습진
병원은 미딩이라는 동네의 커다란 주상복합 건물 3층에 있었어요. 그런데 건물이 크게 세 동으로 나뉘어 있어서, 3층으로 가는 엘리베이터를 찾지 못해 한참을 헤맸습니다. 긴 복도 끝에서 킴스 클리닉 간판을 봤을 때는 드디어 왔구나 싶었어요.
진료를 봐 주신 의사 선생님은 한국분이었어요. 병원에 와 있던 사람들도 다 한국 사람이었고요. 증상을 우리말로 다 설명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놓였습니다.
선생님 말씀으로는 기침은 바이러스 때문에 생긴 것이라 괜찮다고 하셨어요. 가려운 곳은 곰팡이가 아니라 습해서 생긴 습진 같다고 하셨고요. 계속 건조하게 말려 주면서 약을 바르면 된다고 하셨습니다. 베트남 돈 단위는 동인데, 진료비와 약값을 합쳐 120만 500동이 나왔어요. 지금 환율로 셈하면 우리 돈 6만 2천 원쯤이에요. 저한테 적은 돈은 아니었지만, 일주일 내내 붙들고 있던 걱정을 내려놓으니 오길 잘했다 싶었습니다.

외국에서 한식은 아깝다더니
병원에서 나와 보니 같은 건물 1층에 한식집이 있었어요. 순희가라는 곳이었습니다. 사실 저는 떠나기 전만 해도 외국까지 가서 한식을 먹는 건 아깝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일주일 내내 기침에 시달리고 나니 뭔가 얼큰한 게 당기더라고요.
메뉴판에는 돼지 두루치기까지, 한국 식당에 있을 법한 메뉴가 빼곡했어요. 하노이 한식당에서 소주까지 파는 걸 보고 깜짝 놀랐지만, 기침 때문에 이날은 꾹 참고 콜라를 시켰습니다. 사장님께 여쭤보니 부대찌개가 드실 만하다고 하셔서, 부대찌개 1인분에 라면 사리를 넣고 볶음밥도 하나 시켰어요. 주문을 하고 나니 반찬이 아홉 가지나 깔렸어요. 김치에 잡채, 메추리알 장조림까지 한국 식당 그대로라, 여기가 정말 하노이가 맞나 싶었습니다.

엄마가 끓여 주던 부대찌개
드디어 부대찌개가 나왔어요. 햄이 오동통하게 든 부대찌개를 한 숟갈 떠먹자마자, 이 정도면 훌륭하다 싶었죠. 그런데 몇 숟갈 더 먹다 보니 저도 모르게 이 말이 나왔습니다. 「아, 엄마 보고 싶다.」
저는 어릴 때 늘 감기에 걸려 아팠어요. 그렇게 앓다가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나오는 날이면, 엄마가 꼭 부대찌개를 끓여 주셨습니다. 아파서 병원에 다녀온 날 부대찌개를 먹는 건 그때와 똑같았어요. 그 시절 생각에 감동이 살살 올라오는, 딱 그런 맛이었습니다.

6년째 미딩에서 김치를 담그는 집
정신없이 먹다가 사장님께 너무 맛있다는 말을 두 번이나 했어요. 외국에서 이런 부대찌개를 먹게 될 줄은 몰랐거든요. 웬만한 한국 부대찌개집만큼은 한다 싶었습니다. 김치도 사다 쓰는 게 아니라 가게에서 직접 담근다고 하셨어요.
병원에 오는 길에도 한식집 간판이 보였던 게 생각나서, 여기가 한인촌이냐고 여쭤봤어요. 미딩은 한국 사람들이 모여 사는 동네라고 하셨습니다. 사장님은 이곳에서 가게를 한 지 6년째라고 하셨고요. 계산은 라면 사리와 볶음밥, 콜라까지 다 해서 57만 동, 우리 돈 3만 원쯤이었습니다.

한인들이 모여 사는 동네, 미딩
밥을 먹고 나서는 염색을 하러 가기로 했어요. 새치가 꽤 신경 쓰이던 참이었거든요. 유튜브에서 몇 번 봤던 이발소가 마침 같은 미딩 안에 있었습니다.
이발소까지는 걸어서 갔어요. 제가 지내던 동네는 좁은 골목에 오토바이가 빽빽한데, 미딩은 길이 넓고 고층 건물이 줄지어 서 있었어요. 건물 위에는 「K-MARKET」이라는 커다란 간판까지 걸려 있었습니다. 같은 하노이인데 전혀 다른 도시 같았어요. 하노이 한가운데에 이렇게 많은 한국 사람들이 모여 산다니, 신기하면서도 기분이 좀 묘했습니다.

미딩 이발소, 풀케어 55만 동
이발소 간판에는 한글로 「미딩 이발소」라고 적혀 있었어요. 머리 감기에 면도, 귀청소까지 해 주는 풀케어에 새치 염색을 더했습니다. 특히 귀청소를 할 때는 소름이 돋을 만큼 시원했어요.
다 끝나고 거울을 보니 흰머리가 많이 없어져 있더라고요. 풀케어에 염색까지 해서 55만 동, 우리 돈 2만 9천 원쯤이었어요. 기대했던 대로 깔끔했고, 값까지 생각하면 정말 만족스러웠습니다.


콘센트 자리를 찾은 카페
이발소를 나와서는 근처 카페로 들어갔어요. 저는 여행하면서 영상을 찍어 올리고 있었는데, 그 작업이 밀려 있었거든요. 그런데 노트북을 꽂을 콘센트가 있는 자리가 별로 없어서 한참을 두리번거렸습니다.
겨우 구석 자리를 잡고 작업을 시작했어요. 노트북만 들여다보다가 휴대폰 시계를 보니 어느새 밤 8시 53분이었습니다.

밤 9시 38분, 숙소 근처 맥주 한 잔
그랩을 타고 숙소 근처에 내리니 밤 9시 38분이었어요. 낮에는 소주를 참았지만, 괜찮다는 말을 듣고 나니 시원한 맥주 한 잔 생각이 났습니다. 딱 한 잔만 마시고 들어가기로 했어요.
숙소 근처 맥줏집에 자리를 잡았는데 직원분이 한참을 안 오셔서, 나를 보고도 왜 안 오시나 싶어 살짝 서운했어요. 막상 직원분이 오시자 영어로 괜찮다고 웃어 보이고는 맥주를 골랐지만요. 밤의 숙소 근처 골목은 참 예뻐 보였어요. 아직 이 동네에 적응이 덜 돼서 더 예뻐 보이는 건가 싶기도 했습니다. 맥주를 마시며 생각해 보니, 일주일 내내 붙들고 있던 걱정이 하루 만에 다 풀려 있었습니다.

그날 밤의 마음
낯선 나라에서 아픈 몸으로 병원을 찾아간 하루였어요. 그런데 그날 밤 가장 오래 남은 건 병원도, 진단도 아니었습니다. 부대찌개 한 숟갈에 떠오른 엄마였어요. 어릴 때처럼 병원에 다녀온 날 부대찌개를 먹었으니, 생각이 안 날 수가 없었죠.
둘째 날 배탈이 났을 때도 엄마가 챙겨 주신 약봉지를 꺼내 들고 울컥했는데, 아플 때마다 엄마 생각이 나는 건 어쩔 수 없나 봐요. 그날 밤은 유난히 엄마가 보고 싶었습니다.

지금 다시 간다면
아무것도 바꾸지 않을 거예요. 일주일 내내 기침에 시달린 것도, 엄마 생각이 나던 하노이의 부대찌개도 다 추억이니까요. 딱 하나, 이번엔 여행자보험 없이 떠났는데 다음엔 미리 챙기겠습니다. 이번엔 6만 원대로 끝났지만, 더 크게 아팠다면 병원비가 얼마나 나왔을지 모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