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든 사람 호떡이 아빠

호떡아빠의 여행일지 #4

이사 간 날, 호안끼엠의 낭만과 혼돈

이날의 동선입니다. 트립셈 여정 영상으로 만들었어요.

내 여행도 이렇게 — 여정 영상 만들기

배낭 두 개 들고 이사하는 날

처음 잡아 둔 3박이 끝나는 날, 드디어 숙소를 옮겼어요. 엘리베이터 없는 5층을 하루에도 몇 번씩 오르내리는 것도 힘들었지만, 그 숙소는 뜨거운 물이 나오지 않았고 샤워기에는 곰팡이도 꽤 있었거든요. 제 손으로 처음 잡은 숙소였는데, 아쉬움보다 후련함이 컸습니다.

하노이에서는 오토바이 택시를 많이 타지만, 짐이 배낭 두 개라 오토바이로는 무리였어요. 그래서 동남아에서 차나 오토바이를 부르는 앱, 그랩으로 차를 불렀어요. 차 앞 유리 너머로는 좁은 구시가지 골목을 오토바이들이 빈틈없이 오갔습니다. 처음엔 부딪힐 듯 말 듯 스쳐 가는 게 아찔했는데, 보다 보니 어느 순간 그걸 즐기고 있더라고요.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숙소 로비 파란 의자 위에 놓인 검은 배낭 두 개
이사 준비 끝, 배낭 두 개
택시 앞 유리 너머로 보이는 하노이 구시가지 골목과 오토바이
그랩 차 안에서 본 구시가지

체크인 시간 전에 들어간 새 방

새 숙소는 호안끼엠 호수 쪽이었어요. 체크인 시간 전이었는데도 바로 방에 들어갈 수 있었어요. 값은 전 숙소와 거의 같은데 방은 훨씬 깔끔했습니다.

로비에서 직원분께 빨래도 맡길 수 있는지 물어봤어요. 동은 베트남 돈 단위인데, 1kg에 5만 동, 우리 돈 2,600원쯤이라길래 그 자리에서 바로 맡겼습니다.

사실 전날부터 엄지발가락이 계속 아팠어요. 깨끗한 방에 앉아 눌러 봤더니 고름이 나오더라고요. 그래도 이날은 하루 종일 걸어 다녔습니다.

새 숙소 로비에서 허리 숙여 웃는 모습과 손을 모은 직원
새 숙소 로비, 체크인
파란 벽과 그림, 하얀 침대가 있는 새 숙소 방
새 방, 뜨거운 물도 잘 나옴

돌아온 카드와 아빠표 계란볶음밥

점심 전에는 작은 일이 하나 있었어요. 숙소에서 숙박비를 계산하면서 카드를 꽂아 둔 채 깜빡했는데, 베트남 여성분이 찾아서 돌려주신 거예요. 그 카드를 잃어버렸으면 남은 여행이 꽤 꼬였을 겁니다.

점심은 지나가다 들어간 식당에서 쌀국수와 볶음밥을 시켰어요. 볶음밥을 한 숟가락 떠먹었는데, 아빠가 해 주던 계란볶음밥 맛이 나더라고요. 하노이까지 와서 아빠 손맛을 만날 줄은 몰랐어요. 밥을 먹고 나서는 길에서 오렌지와 파인애플을 섞은 주스도 한 잔 사 마셨습니다.

쌀국수를 먹는 모습과 앞에 놓인 계란볶음밥 · 콜라
쌀국수와 계란볶음밥

로터리 카페, 그리고 동행 지운

오후 4시 반쯤에는 호안끼엠 호수 근처 로터리가 내려다보이는 카페에 앉아 있었어요. 창밖으로는 오토바이와 차가 로터리를 빙글빙글 돌았고, 카페 안에는 옛날 책이 빼곡한 책장과 베트남 국기, 흑백 사진이 걸려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날은 혼자 하던 여행에 처음으로 동행이 생겼습니다. 인터넷 여행 카페와 오픈채팅에서 같이 다닐 사람을 구했는데, 그렇게 이날 처음 만난 사람이 지운이었어요. 지운은 하노이에서 한 달을 지낸 28살 한국 청년이었어요. 하노이에서 가 볼 만한 곳으로 호찌민 묘와 군사박물관을 알려 주기도 했습니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본 호안끼엠 북쪽 로터리와 오토바이 · 차
오후 4시 반, 카페에서 내려다본 로터리
옛날 책이 꽂힌 나무 책장과 베트남 국기가 걸린 카페 안
옛날 책이 가득하던 카페
하노이 거리에서 얼굴을 가린 동행 지운과 함께 선 모습
오늘의 동행, 지운

1,000원 로띠와 5만 동 논라

지운과 함께 걷다가 모카번이라고도 부르는 동그란 빵, 로띠를 사 먹었어요. 한 개에 2만 동이었는데, 셈해 보니 우리 돈 1,000원이었어요. 길에서 한 입 베어 물고는 이렇게 싸도 되나 싶었습니다.

사실 로띠를 먹기 전에 길을 걷다가 차에 살짝 부딪힌 일이 있었어요. 다친 데는 없었지만, 차는 저를 박고 그냥 지나갔고 주변에서도 아무도 이상하게 여기거나 뭐라고 하지 않았어요. 그 뒤로는 좁은 길에서 차가 다가올 때마다 아까처럼 또 부딪힐 것만 같았습니다.

조금 더 가니 길가 시장에서 베트남 사람들이 쓰는 원뿔 모양 전통 모자, 논라가 눈에 들어왔어요. 보자마자 저 모자 하나 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죠. 처음엔 10만 동을 불렀는데, 5만 동까지 깎아서 샀어요. 분홍 체크무늬 끈을 턱에 묶으니 저도 제법 하노이 사람 같았습니다.

길에서 로띠를 한 입 먹는 모습
2만 동짜리 로띠
논라를 쓰고 끈을 턱에 묶은 셀카
논라 쓴 날의 셀카

해 질 녘 호수와 1만 동 꼬치

논라를 쓰고 호안끼엠 호수를 따라 걸었어요. 호안끼엠은 「검을 돌려준 호수」라는 뜻이에요. 레 러이 왕이 황금 거북에게 신검을 돌려줬다는 전설에서 나온 이름이고, 호숫가는 입장료 없이 걸을 수 있어요. 해가 기울자 나무 그늘 아래 벤치마다 사람들이 앉아 쉬고 있더라고요. 전 숙소 근처에 있던 큰 호수, 서호보다 물이 깨끗해 보였어요. 지운은 이 호수에만 스무 번은 넘게 왔다고 했습니다.

호숫가 숯불 앞에서는 소시지 꼬치를 굽고 있었어요. 한 개에 1만 동, 우리 돈 500원쯤이었어요. 지운과 같이 사 먹었습니다.

베트남 전통 모자 논라를 쓰고 호숫가 가로등 아래 선 모습
논라를 쓰고 호숫가로
나무 그늘 산책로와 호안끼엠 호수, 멀리 붉은 다리
해 질 녘 호안끼엠 호수
숯불 위에 줄지어 놓인 소시지 꼬치와 지폐를 내미는 손
1만 동짜리 소시지 꼬치

조심조심 먹은 분짜

저녁은 분짜였어요. 분짜는 숯불에 구운 돼지고기와 쌀국수 면을 새콤달콤한 국물에 찍어 먹는 하노이 음식이에요. 사흘 전 장염 때문에 포기했던 분짜를 드디어 먹게 됐어요. 튀긴 스프링롤인 넴과 하노이 맥주도 함께였습니다.

그런데 한 달 동안 하노이에 산 지운이 음식이 만든 지 좀 지난 것 같다고 했어요. 그 장염으로 크게 고생한 터라, 저는 더 욕심내지 않고 서둘러 일어났습니다. 조심해서 나쁠 건 없으니까요.

분짜 국물 그릇과 쌀국수 면, 채소, 튀긴 넴, 하노이 맥주
분짜와 넴, 하노이 맥주

밤 호숫가의 춤과 짱띠엔 아이스크림

밤이 되자 호숫가 광장에서 사람들이 음악에 맞춰 춤을 추고 있었어요. 아주머니도, 아저씨도 아무렇지 않게 몸을 흔들었어요.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저까지 신이 났습니다.

입가심으로는 짱띠엔이라는 가게의 하얀 막대 아이스크림을 먹었어요. 우리 돈 700~800원쯤이었어요. 베트남 국기가 줄줄이 걸린 가게 앞에서 아이스크림을 물고 있으니, 오늘 하루가 꽤 괜찮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밤 호숫가 광장에서 음악에 맞춰 춤추는 사람들
밤 호숫가에서 춤추는 사람들
베트남 국기가 걸린 가게 앞에서 하얀 막대 아이스크림을 먹는 모습
짱띠엔 아이스크림

다시는 안 탄다던 오토바이 택시

지운과는 거기서 헤어졌어요. 지운은 그랩으로 오토바이 택시를 불러 노란 헬멧을 쓰고 먼저 떠났어요. 오토바이 택시는 앱으로 부르면 기사님이 뒤에 태워 주는 택시예요. 저도 하나 불러 혼자 숙소로 향했습니다.

속도는 전동 킥보드보다 조금 빠른 정도였는데, 이상하게 정말 무서웠어요. 재밌기도 했지만요. 숙소 앞에 내리자마자 다시는 베트남에서 오토바이를 타지 않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이 사람들이 이렇게 타고 다니는 걸 보면, 베트남에는 분명 오토바이 세계 챔피언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나중에 챗GPT에 물어보니, 국제 무대에서 두각을 나타낸 선수는 아직 드물다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숙소 엘리베이터에서는 한국말로 이야기하는 어머님과 아드님을 만났어요. 반가워서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를 했더니, 어머님이 아이고 하시며 깜짝 놀라셨어요. 두 분이 먼저 내리셨는데, 문이 닫히기 직전에 방으로 들어가시던 어머님의 나지막한 말소리가 들렸습니다. 「중국인인 줄 알았어~」

인천공항 면세점에서는 직원분이 저한테만 영어로 말을 걸더니, 이번엔 중국 사람이 됐어요. 웃기면서도 묘하게 속상했습니다.

밤길에서 노란 헬멧을 쓰는 동행과 오토바이에 앉은 기사
지운도 오토바이 택시로
가로등과 나무가 이어진 하노이 밤길을 달리는 오토바이
오토바이 택시 뒷자리에서 본 밤길

잠이 안 와 나간 골목, 사이공 맥주

방에 올라와 샤워부터 깔끔하게 했어요. 개운해서 바로 잠들 줄 알았는데, 이상하게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결국 밤 10시가 넘어 다시 나왔어요. 베트남 국기가 줄지어 걸린 골목에 작은 가게가 보이길래 그냥 앉았죠. 튀김 한 접시에 사이공 맥주 한 캔을 시켰어요. 사이공은 베트남 맥주 이름입니다.

베트남 국기가 줄지어 걸린 밤 골목과 길가 식당
잠이 안 와 다시 나간 밤 골목
대나무 접시의 튀김과 소스, 사이공 맥주 캔
골목에서 사이공 맥주 한 캔

그날 밤의 마음

맥주를 마시며 하루를 떠올려 보니, 호안끼엠이 너무 마음에 들었어요. 호수도, 시장 골목도, 밤에 춤추던 사람들도요. 진작 이쪽에 숙소를 잡을 걸 그랬나 싶었습니다.

혼자 떠난 여행에 처음 동행이 생긴 것도 즐거웠어요. 같이 걷고, 같이 사 먹고, 분짜를 대신 걱정해 주는 사람이 있으니 하루가 훨씬 든든했어요. 그리고 오토바이 택시는, 다시 생각해도 무서웠습니다.

맥주를 한 모금 마시고 눈을 질끈 감은 얼굴
샤워하고 마신 맥주 첫 모금

지금 다시 간다면

처음부터 호안끼엠 쪽에 숙소를 잡을 거예요. 그리고 그날 밤 다시는 안 탄다고 다짐했던 오토바이 택시는, 아마 또 탈 거예요. 무서웠지만 재밌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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