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떡아빠의 여행일지 #3
장염 다음 날, 하노이 미식 대참사(?)
새벽 5시에 잠든 사람
전날 밤은 배탈로 정말 죽는 줄 알았어요. 떠나기 전 어머니가 챙겨 주신 약을 먹고 화장실에 30분을 앉아 있던 밤이었죠. 결국 새벽 5시쯤에야 잠이 들었고, 눈을 떠 보니 오전 9시 40분이었습니다. 한두 시간도 못 잔 것 같은 기분이었어요.
장염은 오후까지 계속 말썽이었어요. 에어컨을 끄면 방이 금세 더워져서, 에어컨은 켜 둔 채 이불을 둘둘 감고 누워 있었습니다. 원래는 나가서 이것저것 해 보려던 날이었거든요. 시계를 보니 벌써 오후 3시 10분이었어요. 더는 안 되겠다 싶어서, 엘리베이터 없는 5층 계단을 내려가 밖으로 나왔습니다.

번역 앱이 알려 준 「충선사」
숙소 근처 호수를 따라 걷다가 작은 절을 하나 만났어요. 간판 글자를 읽을 수가 없어서 휴대폰 번역 앱으로 비춰 봤더니 「충선사」라고 나왔어요. 진짜 이름이 맞는지는 지금도 모르지만, 그날 제 머릿속에서 그 절은 충선사였습니다.

문 앞에는 파란 플라스틱 의자가 하나 놓여 있었고, 문턱 위에는 노란 안내판이 붙어 있었어요. 베트남어로 신발은 밖에 벗어 두라는 안내였습니다. 저는 절 같은 곳에 거의 가 본 적이 없어서, 문 앞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꽤 낯설었어요. 문 안을 한번 들여다보고는 다시 호숫가로 나왔습니다.


길가의 카드놀이
호숫가 길에는 구경할 게 많았어요. 길가 잔디밭 옆에서는 어르신들이 카드놀이를 하고 계셨어요. 바닥에 파란 판을 깔고, 의자와 돌 벤치에 둘러앉아 카드를 한 장씩 내려놓는 모습이었습니다. 어르신들이 모여 계시길래 포커 같은 걸 하시나 했는데, 가까이 가서 보니 꼭 원카드 같았어요. 베트남 어르신들도 원카드를 하시는구나 싶었습니다.

그렇게 호숫가를 따라 걷다가, 길가에서 낯익은 이름의 간판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롯데리아는 한식이니까
눈에 들어온 건 롯데리아였어요. 한국에도 있는 바로 그 햄버거 가게요. 처음엔 그냥 보여서 들어갔는데, 들어가고 나서 생각해 보니 몸이 아픈 날이잖아요. 한식을 먹으면 좀 낫지 않을까 싶었어요. 롯데리아는 한식(?)이니까요.
제가 고른 건 라면버거였어요. 빵 자리에 튀긴 라면이 들어간 버거예요. 동은 베트남 돈 단위인데, 라면버거 세트가 6만 5천 동이라 그 자리에서 셈해 보니 3,560원쯤이었어요. 다 먹고 나니 역시 롯데리아는 한식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닭꼬치 플러스 치토스
롯데리아를 나와 호숫가 공원을 지나는데 운동기구가 보였어요. 동네 어른도 아이도 하나씩 붙잡고 운동하고 있었어요. 생김새가 한국 동네 공원에 있는 운동기구랑 똑같아서 웃음이 났습니다.

조금 더 가니 길가 숯불 앞에서 발이 멈췄어요. 칠리소스를 바른 돼지고기 꼬치를 굽고 있었거든요. 장염 다음 날이라는 건 잠깐 잊기로 했어요. 하나 사서 먹어 보니, 우리나라 닭꼬치에 치토스 풍미를 더한 맛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ATM을 찾아 헤맨 오후
그다음엔 ATM을 찾아 한참을 돌아다녔어요. 현금이 거의 바닥이라 이러다 큰일 나겠다 싶었는데, 다행히 결국 ATM을 찾아서 돈을 뽑았습니다.

그렇게 돌아다니던 중에 반가운 연락이 왔어요. 한국에서 알던 베트남 동생, 안이였습니다. 제가 하노이에 온 걸 알고 안이가 먼저 연락을 해 온 거예요. 코로나 때 제 일을 못 하게 되면서 아는 형님네 횟집에서 일한 적이 있는데, 거기서 같이 일하던 동생이 안이였습니다. 일도 열심히 하고 손도 빠르고, 참 착한 동생이었습니다.
그 안이가 지금 하노이에 있다는 거예요. 모르는 나라에 와서 아는 얼굴을 만나게 될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저녁은 안이랑 해산물을 먹기로 하고 약속한 가게로 걸어갔습니다.

안이가 베트남어로 시킨 저녁
약속한 곳은 길가에 빨간 플라스틱 탁자를 내놓은 해산물 집이었어요. 가게 이름은 하이산 투이부(Hải sản Thuỷ Vũ)인데, 하이산이 베트남어로 해산물이라는 뜻이에요. 지도 앱 평점은 4.6이었습니다. 안이를 보자마자 반가운 마음에 이름부터 크게 불렀습니다.
메뉴는 안이에게 맡겼어요. 안이는 맛있는 것만 시켜 주겠다며 베트남어로 척척 주문했어요. 옆에서 듣는데 베트남어가 귀엽게 들려서 귀가 간질간질했습니다. 계산은 제가 하겠다고 먼저 말해 뒀습니다.
식탁에는 노란 소스를 끼얹은 골뱅이와 오징어, 조개 국물 냄비가 올라와 꽉 찼어요. 베트남식 바게트인 반미 빵도 하나 같이 나왔고요. 조개 국물을 떠먹어 보니 매콤한 맛이 맵고 새콤한 태국식 국물 요리, 똠얌꿍이랑 비슷했습니다.
먹으면서 안이한테 이상한 걸 먹은 것도 없는데 배탈이 났다고 하소연했어요. 그래 놓고 저는 숟가락을 놓지 않았어요. 장염이 다 낫지도 않은 날에 버거, 꼬치, 해산물까지 양껏 먹었으니, 이게 바로 제 장염 다음 날의 미식 대참사입니다.

통역하는 안이와 80만 동
안이한테 하노이에서 무슨 일을 하느냐고 물었더니 통역 일을 한다고 했어요. 한국 횟집에서 같이 일하던 동생이 이제 통역을 한다니, 제가 다 뿌듯했습니다.
다 먹고 나니 안이가 손 씻는 법을 알려 줬어요. 해산물을 먹으면 손에 냄새가 배니까, 잎을 띄운 물에 손을 씻는 거예요. 계산서는 80만 동이었어요. 해산물 요리 네 가지에 맥주 세 개였는데, 머릿속으로 셈해 보니 4만 5천 원쯤이었어요. 둘이서 이렇게 먹고 이 정도면 너무 좋다 싶었습니다. 낮에 ATM에서 뽑아 둔 돈으로 제가 냈어요. 가게를 나오면서는 너무 잘 먹었다는 말만 몇 번을 했는지 몰라요.


안이의 휴대폰 속 그림
후식으로 음료 가게에도 들렀어요. 저는 사실 카페인을 잘 못 먹어서, 말차에도 카페인이 있을 거라며 메뉴 앞에서 한참 망설였어요. 음료를 들고 앉은 자리에서는 안이가 자기가 그린 그림을 휴대폰으로 보여 주더라고요. 보자마자 그림 실력이 대단하다 싶었습니다.

그러는 사이 밖에는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어요. 주문부터 손 씻는 법까지 하루 내내 안이 도움을 받았으니, 헤어질 때는 또 도움이 필요하면 연락하겠다고 인사했습니다.

2만 동 맥주와 우비
숙소 쪽으로 돌아오는 길은 벌써 눈에 익었어요. 하노이에 온 지 겨우 사흘째인데, 숙소 앞 거리에 벌써 정이 들었더라고요. 숙소 근처 맥줏집에도 들렀습니다.
메뉴판 맨 위에 있는 하노이 맥주가 한 병에 2만 동이었어요. 두 병을 마시고 4만 동. 휴대폰 계산기를 두드려 보니 2,168원이 나왔어요. 두 병에 2,168원이라니, 믿기지 않을 만큼 싸다고 생각했습니다.
창밖으로는 비가 계속 쏟아졌는데, 사장님이 먼저 우비를 챙겨 주셨어요. 베트남 분들은 어쩜 다들 이렇게 착한지 모르겠어요. 그 우비를 쓰고 숙소로 돌아왔습니다.


그날 밤의 마음
숙소에 돌아와 하루를 떠올려 보니, 가장 크게 남은 건 반가움이었어요. 말도 잘 안 통하는 낯선 나라에서, 한국에서 같이 일하던 동생을 만나 밥을 먹었잖아요. 혼자 떠난 여행이었지만 그날 저녁만큼은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마음을 하나 정했어요. 숙소를 옮기기로요. 엘리베이터 없는 5층을 하루에도 몇 번씩 오르내리다 보니, 밖에 한 번 나가는 게 무서워질 정도였거든요.

지금 다시 간다면
이 날은 바꿀 게 없어요. 새벽 5시까지 뒤척인 밤도, 한식(?)이라 우기며 먹은 라면버거도, 장염을 잠깐 잊고 먹은 꼬치와 해산물도 다 그날을 만든 장면들이니까요. 장염 다음 날 양껏 먹은 미식 대참사였지만, 다시 가도 아마 똑같이 먹을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