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든 사람 호떡이 아빠

호떡아빠의 여행일지 #2

반미야, 너 잘못 아니야(아마도)

이날의 동선입니다. 트립셈 여정 영상으로 만들었어요.

내 여행도 이렇게 — 여정 영상 만들기

반미 하나 보고 온 사람

전날 밤 자정이 다 돼서야, 안에서 나오던 다른 투숙객이 열어 준 문으로 겨우 방에 들어간 터라 체크인을 하지 못했어요. 그래서 아침이 되어서야 직원분께 영어로 체크인을 부탁했어요. 숙소 계단과 건물이 꼭 옛날 유럽 건물 같아서, 하노이에 온 건지 유럽에 온 건지 잠깐 헷갈렸습니다.

체크인을 하면서 아침으로 뭘 먹으면 좋을지도 물어봤어요. 직원분 말이 빨라서 다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추천해 준 메뉴만큼은 확실히 들렸어요. 반미였습니다. 반미는 바게트 빵에 고기와 채소를 채운 베트남식 샌드위치예요. 반미를 먹으러 하노이에 온 저한테 반미라니, 고민할 것도 없었죠.

가방 속에는 떠나기 전 어머니가 챙겨 주신 약봉지도 들어 있었어요. 그날 밤 그걸 꺼내게 될 줄은 그때는 몰랐습니다.

숙소 창밖으로 내려다본 아침 호수와 지붕들
둘째 날 아침, 숙소 창밖

붉은 등 거리, 오전부터 33도

밖에 나오자마자 더위가 확 느껴졌어요. 휴대폰으로 날씨를 보니 아직 오전 11시도 안 됐는데 33도였어요. 아침부터 이 정도라니 싶었죠. 붉은 등이 줄지어 걸린 거리를 따라 걸었는데, 중국 같기도 하고 동남아 같기도 한 풍경이 낯설고 신기했습니다.

호숫가를 지날 땐 물이 탁해 보여서 별로라고 생각했는데, 가만 보니 물고기도 살고 낚시하는 분들도 있었어요. 땀은 계속 흘렀지만 기분은 좋았어요. 낯선 곳에 혼자 있다는 즐거움이 이런 거구나 싶었습니다.

붉은 등과 깃발이 줄지어 걸린 하노이 거리
붉은 등이 걸린 거리, 오전

바둑이와 2,900원 스테이크

걷다가 길에서 코기 한 마리를 만났어요. 손을 내미니 길바닥에 벌러덩 누워 배를 보여 주더라고요. 꼭 쓰다듬어 달라는 것 같았어요. 이름은 몰라서 저는 이 녀석을 바둑이라고 부르기로 했습니다.

조금 더 걷다가 한 가게 앞 메뉴판에서 고기 스테이크 150g이 55,000동이라는 걸 봤어요. 우리 돈으로 2,900원쯤이에요. 너무 싼 거 아닌가 싶어서 밤에 다시 와 보기로 했어요. 그래도 일단은 아침으로 정한 반미부터 먹으러 갔습니다.

길바닥에 엎드린 코기에게 손을 내민 모습
길에서 만난 바둑이
길가 스테이크 집의 메뉴판, 콤보마다 100g과 150g 값이 적혀 있다
길가 스테이크 집 메뉴판, 150g 5만 5천 동

드디어, 반미

지도 앱으로 찾아간 반미 가게는 다행히 줄이 없었어요. 저는 맛집은 좋아해도 줄 서는 건 질색이라 그것부터 마음에 들었어요. 스페셜 라지 크기로, 오이는 빼고 맵게 해 달라고 주문했습니다.

받아 보니 한 손으로 들기 버거울 만큼 컸어요. 속을 들여다보니 야채가 생각보다 적어서 조금 아쉬웠어요. 그런데 한 입 먹자마자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진짜 개 맛있다.」 바삭한 바게트에 양념한 고기와 햄이 가득했고, 칠리소스를 뿌리니 맛이 확 살았습니다.

다 먹어 갈 즈음 주인분이 맛있게 먹어 줘서 고맙다며 말을 걸어 오셨어요. 영어와 번역기를 번갈아 쓰며 잠깐 이야기를 나눴어요. 계산할 때는 0 때문에 또 헷갈렸습니다. 베트남 돈은 단위가 커서 0이 줄줄이 붙거든요. 값이 70동인지 7만 동인지 한참 세어 보고서야 7만 동인 걸 알았어요. 첫날 공항 유심 가게에서도 35만 동이라는 말에 두 번이나 되물었는데, 하루 만에 같은 일을 또 한 셈이에요. 우리 돈으로는 3,700원 정도였어요. 가게를 나서며 하노이를 떠나기 전까지 몇 번은 더 오겠다고 다짐했습니다.

큰 반미를 들고 칠리소스 병을 기울이는 모습
반미 스페셜 라지, 칠리소스 추가

아치 기둥 카페의 영국 형님

반미를 먹고 나서 근처 카페에 들어갔어요. 하얀 아치 기둥이 인상적인 곳이었어요. 화이트 커피를 주문했는데, 달고 우유 맛이 진해서 꼭 맛있는 믹스 커피 같았습니다. 후식으로 딱이었죠.

커피를 마시고 있는데 그 카페에서 일하는 영국인 직원분이 다가와 말을 걸었어요. 저는 속으로 그분을 영국 형님이라고 불렀어요. 형님은 베트남 전통 커피부터 블랙 커피, 카페 모이라는 처음 듣는 커피까지 이것저것 설명해 주셨는데, 영어가 빨라서 반 정도만 알아들었습니다. 그래도 끝까지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어요.

카페를 나와 날씨를 확인해 보니 35도였어요. 아침보다 2도나 올라 있었습니다.

하얀 아치 기둥과 베트남 국기가 걸린 카페 안
아치 기둥이 있던 카페

저녁은 분짜로 정한 오후

저는 여행하면서 유튜브에 영상을 올리고 있었는데, 숙소로 돌아와서는 그 밀린 영상 작업을 했어요. 그날따라 메모리카드에 문제가 생겨 시간이 오래 걸렸고, 정신을 차려 보니 여섯 시간이 지나 있었습니다.

낮에 봐 둔 스테이크 집도 있었지만, 저녁 메뉴는 지도 앱을 보다가 분짜로 정했어요. 평점과 후기가 좋은 분짜 집이 눈에 띄었거든요. 분짜는 숯불에 구운 돼지고기와 쌀국수 면을 새콤달콤한 국물에 찍어 먹는 하노이 음식이에요. 반미로 시작한 하루를 분짜로 끝내면 딱이겠다 싶었습니다.

나무 천장 아래 짐이 흩어진 숙소 침대
숙소 방, 오후

긴팔을 입은 밤

해가 진 뒤 분짜 집을 찾아 나섰어요. 그런데 구글 지도가 계속 오류가 나서 한참을 헤맸어요. 그러던 중에 배가 아프기 시작했습니다. 위가 조이는 듯한 통증이라, 처음엔 물갈이인가 싶었습니다.

그러다 문득 제 옷차림이 눈에 들어왔어요. 낮에는 35도까지 올라 땀을 줄줄 흘렸던 날인데, 저녁에 나오면서 아무 생각 없이 긴팔을 입고 있었던 거예요. 그 옷을 입고도 더운 줄을 몰랐어요. 그제야 단순한 배탈이 아니라 몸 전체가 이상하다는 게 실감 났어요. 결국 분짜는 포기했습니다. 낮에 봐 둔 2,900원 스테이크도 물론 못 갔고요.

붉은 깃발이 걸린 밤 호숫가 길에 선 모습
분짜를 찾아 나선 밤

엄마의 빨간 글씨

숙소로 돌아와 가방에서 어머니가 챙겨 주신 약봉지를 꺼냈어요. 봉지에는 어머니가 빨간 펜으로 「배 아프고 설사」라고 적어 두셨고, 그 아래에는 위장약과 같이 먹으면 안 된다는 주의까지 적혀 있었습니다.

그 글씨를 보는데 「엄마 사랑해」라는 말이 저도 모르게 나왔어요. 눈물이 날 것 같았어요. 떠나던 날 출국장에 들어가기 전 어머니와 통화하던 게 떠올랐습니다. 어머니는 그때 이미 이런 날까지 생각해 두셨던 거예요. 다 큰 어른이 하노이까지 와서 엄마 약봉지를 붙들고 있으니, 웃기면서도 마음이 이상했습니다.

빨간 손글씨가 적힌 약봉지를 든 손
어머니가 적어 주신 약봉지

편의점의 작은 한국

그래도 뭐라도 사 오려고 다시 나갔어요. 같은 숙소에 묵던 분이 근처 편의점 위치를 알려 주셨어요. 편의점에 들어가니 한국식 도시락과 한국 과자가 꽤 많아서 놀랐습니다. 소주도 보였지만, 배 상태를 생각해서 보기만 하고 참았습니다.

그리고 길을 알려 주신 분께 드리려고 과자를 하나 샀어요. 아픈 와중에도 그 정도는 하는 게 예의일 것 같았거든요.

한국 과자가 섞인 편의점 과자 진열대
하노이 편의점의 과자 진열대

그날 밤의 마음

숙소에 돌아오자마자 창밖으로 엄청난 비가 쏟아졌어요. 말로만 듣던 스콜이었어요. 약을 먹고 화장실에 30분을 앉아 있으면서, 아침에 먹은 반미를 잠깐 의심하기도 했습니다.

그날 밤은 정말 죽을 것 같았어요. 하루를 정리할 힘도 없었어요. 그런데 지금 떠올려 보면, 가장 오래 남은 건 아팠던 배가 아니라 약봉지에 적힌 어머니의 빨간 글씨예요. 혼자 떠난 여행이었지만 가방 속에는 어머니의 걱정이 같이 들어 있었던 거죠. 그 글씨를 보고 울컥했던 마음은 지금도 생생합니다.

숙소 창밖으로 보이는 밤 호수와 불빛
그날 밤, 숙소 창밖

지금 다시 간다면

반미는 또 먹을 거예요. 대신 도착 다음 날만큼은 쉬엄쉬엄 다닐래요. 33도에서 35도까지 오르는 날씨에 오전 내내 걸어 다니고, 밤에 또 분짜를 찾아 나섰으니 몸이 버티기 어려웠겠죠. 그러니 반미야, 너 잘못은 아니야. 아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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