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든 사람 호떡이 아빠

호떡아빠의 여행일지 #1

숙소 한 번 안 잡아 본 피래미, 혼자 비행기를 타다

이날 밤의 동선입니다. 트립셈 여정 영상으로 만들었어요.

내 여행도 이렇게 — 여정 영상 만들기

떠나기 전

고백부터 할게요. 저는 여행을 남이 짜 준 대로만 다녀 봤어요. 비행기표도 숙소도 늘 누군가 대신 잡아 줬고, 저는 따라가기만 하면 됐죠. 그런 제가 혼자, 그것도 동남아부터 쭉 돌아보겠다는 계획 하나만 들고 떠났습니다. 첫 자유여행이 세계여행이라니, 지금 생각해도 무슨 깡이었나 싶어요.

첫 도시는 하노이였어요. 가깝고 비행기값이 싸서, 처음 혼자 가는 곳으로는 부담이 덜했거든요. 쌀국수와 반미가 한몫했다는 것도 솔직히 인정합니다.

배낭을 멘 두 사람이 서울 골목에 서 있다
출발 날, 배낭을 메고

동네 친구들의 케이크

떠나기 전, 동네 친구들 그리고 저와 같이 음악을 하는 친구가 자리를 마련해 줬어요. 늘 가던 단골집이었습니다.

식사가 끝날 즈음 친구들이 케이크를 들고 나왔어요. 생각지도 못한 일이라 입을 가리고 웃기만 했어요. 한 친구는 향수를 선물해 줬습니다. 여행지에서 뿌리고 다니면, 나중에 이 냄새를 맡을 때마다 여행이 생각날 거라면서요. 그 말이 꽤 오래 남았습니다.

떠나기 전날 밤에는 술도 꽤 마셨어요. 그 숙취가 다음 날 밤까지 이어질 줄은 몰랐죠.

케이크를 받고 입을 가리며 웃는 모습
떠나기 전, 친구들이 준비한 케이크

집에 두고 온 휴대폰

출발 날은 하늘이 정말 맑았어요. 날씨는 정말 좋았는데, 정작 세계여행을 떠난다는 실감은 잘 나지 않았어요. 그런데 집을 나서고 얼마 안 돼서 휴대폰이 없다는 걸 알았죠. 「아… 집에 핸드폰 두고 왔어」 세계여행 첫날부터 이럴 줄은 몰랐습니다. 결국 아버지 어머니가 휴대폰을 챙겨 가져다주셨어요. 첫 혼자 여행을 부모님 도움으로 시작한 셈이죠.

인천공항에서 짐을 부치고 나니 머리가 핑 돌았어요. 전날 마신 술 때문인지, 혼자 하나하나 챙기느라 긴장해서인지는 저도 모르겠어요. 출국장에 들어가기 전에는 어머니와 통화를 했습니다.

인천공항 터미널 앞 횡단보도와 차도
인천공항, 출발 날 오후

조니워커 앞에서

면세점에서는 조니워커 앞에서 한참을 망설였어요. 긴 여행을 앞두고 돈을 아끼려고 결국 사지 않았는데, 참다가 죽는 줄 알았습니다.

이상한 일도 하나 있었어요. 면세점 직원분이 다른 손님들에게는 한국어로 말하는데, 저한테만 영어로 말을 걸더라고요. 제가 그렇게 외국 사람처럼 보였나 싶어서 혼자 웃었습니다.

면세점 조니워커 간판
인천공항 면세점의 조니워커

밤 10시, 하노이 공항

하노이에는 밤 9시 반쯤 내렸어요.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더운 공기가 확 느껴졌어요. 에어컨이 나오는 공항 안에서도 더웠습니다. 그제야 정말 외국에 왔다는 실감이 났습니다.

베트남 돈이 하나도 없어서 환전부터 했어요. 베트남 돈 단위는 동인데, 지폐마다 0이 줄줄이 붙어 있어서 영 익숙하지 않았어요. 망고 스무디를 미디엄 사이즈로 한 잔 사 마셨는데, 생각보다 달지 않아서 맛있었습니다.

유심 가게에서는 35만 동이라는 말에 같은 걸 두 번이나 되물었어요. 0이 많아서 비싼 건지 싼 건지 감이 안 왔거든요. 결국 35만 동을 내고 유심을 샀어요. 지금 환율로 셈해 보면 우리 돈 1만 8천 원쯤이에요. 이것저것 하다 보니 공항 밖으로 나온 건 밤 10시가 넘어서였습니다.

밤의 하노이 노이바이 공항 앞 주차장과 가로등
하노이 노이바이 공항 앞, 밤 10시쯤

택시 기사 닝

택시는 어디서 어떻게 타는지도 몰랐어요. 두리번거리다 한 택시 기사님을 따라가게 됐는데, 따라가면서도 속으로는 바가지를 쓰는 건 아닌지 걱정했습니다.

그 기사님의 이름은 닝이었어요. 걱정과 달리 닝은 끝까지 친절했어요. 닝은 운전하면서 휴대폰 번역기를 띄워 놓고 대화를 이어 갔습니다. 일 때문에 왔냐고 묻길래 여행이라고 했고, 쌀국수를 좋아한다는 이야기도 했어요. 닝은 베트남에 왔으면 바다 위에 섬이 흩어진 하롱베이, 배를 타고 동굴을 지나는 짱안, 산골 마을 사파에도 가 보라고 추천해 줬습니다.

제가 숙소가 번화가와 가까운지 물어보기도 했고, 이야기가 이리저리 흘러 김정은 이야기까지 나왔어요. 나이 이야기도 했는데, 닝은 93년생에 아이가 넷이라고 했어요. 30대 중반인 저는 숙소 하나 잡는 것도 벌벌 떨고 있었는데 말이죠. 여행하면서 영상을 찍고 있다는 이야기도 했어요. 그리고 배가 너무 고프다는 말을 몇 번이나 했습니다.

밤 택시 안 계기판 화면
닝의 택시 안, 밤 11시쯤

밤 11시 반의 쌀국수

배고프다는 제 말에 닝이 동네 쌀국수 집으로 데려가 줬어요. 밤 11시 반쯤, 둘이 같이 앉아 가장 기본 쌀국수를 먹었어요. 고기 냄새가 거의 없고 고수 향이 국물에 잘 섞여 있었습니다. 전날 마신 술이 뜨거운 국물에 쑥 내려가는 느낌이어서, 하노이 첫 끼가 해장이 된 셈이었죠.

같이 나온 기다란 튀김은 국물에 적셔 먹으니 간이 배어서, 떡볶이 국물에 만두를 찍어 먹는 맛이 났어요. 콜라도 한 병 마셨고요. 계산은 제가 했어요. 처음 만난 사람과 먹은 첫 끼를 제가 낼 수 있어서 뿌듯했어요. 가게를 나설 땐 배가 터질 것 같았습니다.

쌀국수 가게에서 기사님과 함께 찍은 사진
밤 11시 반, 닝과 쌀국수

자정의 입구 찾기

숙소는 부킹닷컴에서 잡은 「The Autumn Homestel」이었어요. 3박을 잡아 두었는데, 제 손으로 처음 잡은 숙소였습니다.

쌀국수 집을 나와 숙소 주소로 찾아간 건 자정 무렵이었어요. 골목까지는 찾았는데 어디가 입구인지 알 수가 없었어요. 골목에서 도마뱀이 지나가서 깜짝 놀라기도 했습니다. 한참을 서성이는데 마침 안에서 나오던 투숙객이 문을 열어 줘서 겨우 들어갔습니다.

방은 5층이었어요. 엘리베이터가 없는 건물이라 무거운 배낭을 메고 계단을 올라야 했어요. 방에 들어가 화장실을 확인하고 창밖을 내다보고 나서야 숨이 좀 쉬어졌습니다. 창밖으로는 좁은 골목과, 그 너머로 호수가 보였어요. 짐을 내려놓고 나니, 해외에서 제 손으로 숙소를 잡아 본 게 처음이라는 게 새삼 실감 났어요. 쉽지는 않았지만 어떻게든 해냈다 싶었습니다.

숙소 창밖으로 내려다본 밤 골목
숙소 창밖 골목, 자정 무렵

자정 넘어, 다시 골목으로

일찍 자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아까 밤늦게 밖으로 나가는 사람들을 보니 밤에 다녀도 그렇게 위험한 동네는 아닌 것 같았어요. 결국 자정이 넘어 다시 밖으로 나갔어요. 베트남 국기가 걸린 좁은 골목을 지나 호숫가 쪽으로 걸었습니다.

길가 낮은 플라스틱 의자에 현지 분들이 모여 앉아 있었고, 지나가던 저를 그분들이 불러서 그 자리에 끼게 됐어요. 말은 거의 안 통해서, 속으로는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다는 생각뿐이었어요. 그래도 제가 한국에서 왔다는 걸 알자 다들 반가워했습니다.

베트남 국기가 걸린 좁은 골목길, 밤
자정 넘어 다시 나간 골목

같이 사진을 찍고, 맥주도 얻어 마셨어요. 그분들이 먼저 사 주셔서, 저는 고맙다는 인사만 여러 번 했어요. 자정이 한참 지났는데도 다들 에너지가 넘쳤습니다.

밤 호숫가에서 엄지를 든 하노이 친구 두 사람
맥주를 사 준 하노이 친구들

그날 밤의 마음

그날 밤엔 뭘 느꼈는지 정리할 틈도 없었어요. 정신이 하나도 없어서, 일단 자고 일어나서 생각하자며 누웠습니다.

그날이 정리된 건 며칠이 지나서였어요. 쉽지 않았는데 결국 해냈고, 만난 사람들은 생각보다 따뜻했어요.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무섭고 지쳤던 것도 맞아요.

제가 왜 이 여행을 떠났는지는, 이 일지를 이어 가며 차차 꺼내 볼게요.

숙소 창밖으로 보이는 밤의 호수와 불빛
숙소 창밖 호수, 자정 무렵

지금 다시 간다면

아무것도 바꾸지 않을 거예요. 집에 두고 온 휴대폰도, 못 찾은 입구도, 두 번 되물은 유심 값도 다 추억이니까요. 딱 하나, 떠나기 전날 술은 참겠습니다. 면세점 위스키도 참았는데, 그 정도는 참을 수 있지 않을까요.

지금 다시 셈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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