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든 사람 호떡이 아빠

호떡아빠의 여행일지 #6

내가 여행을 시작한 이유, 그리고 말 대신 베이스

이날의 동선입니다. 트립셈 여정 영상으로 만들었어요.

내 여행도 이렇게 — 여정 영상 만들기

아주머니가 끓여 준 죽

하노이에 온 지 13일째, 기침이 며칠째 멈추지 않았어요. 하노이 공기가 꽤 탁한 탓에 기침이 점점 심해져서, 며칠 밤잠을 설쳤습니다. 나흘 전에는 결국 한인 병원까지 다녀왔고요.

그날 아침, 숙소 식당에 내려가 앉아 있는데 주인 아주머니가 흰 그릇을 들고 오셨어요. 기침하는 제가 걱정되셨는지, 목에 좋다는 것들을 넣어 직접 죽을 끓여 주신 거였습니다. 아주머니는 휴대폰 번역기를 켜고 무엇을 넣었는지 하나하나 설명해 주셨어요. 한 숟갈 뜨는데 괜히 울컥해서, 고맙다는 말밖에 못 했습니다.

한국에도 아플 때 먹는 음식이 있다며, 저도 삼계탕 이야기를 꺼냈어요. 전통 음식이면서 약 같은 음식이라고, 서툰 영어로요. 죽을 다 먹고 나니 몸이 정말 다 나은 것만 같았습니다. 이번 여행은 계획 없이, 오는 대로 다 겪어 보자고 마음먹고 왔는데, 이런 아침까지 겪게 될 줄은 몰랐어요.

휴대폰을 들고 죽에 넣은 재료를 설명하는 숙소 주인 아주머니와 앞에 놓인 죽 그릇
휴대폰 번역기로 죽 이야기를 해 주신 아주머니

미딩에서 만난 이모네 삼겹살 맛

오후에는 미딩으로 갔어요. 미딩은 한국 사람이 많이 사는 하노이 서쪽 동네라 골목마다 한글 간판이 보입니다. 이날은 오랜만에 고기가 당겼어요.

들어간 곳은 오뚜기 식당이었습니다. 냉동 삼겹살과 사이공 맥주를 시키자 반찬이 쟁반 가득 깔렸어요. 김치, 나물, 무침에 계란찜까지 나오는 걸 보고 여기가 하노이가 맞나 싶었죠.

은박지 위에서 얇은 고기가 오그라드는 걸 보고 있으니 어릴 때 생각이 났어요. 이모네 집에 놀러 가면 이모가 불러서 먹이던 바로 그 삼겹살 맛이었거든요. 마요네즈에 와사비를 섞은 소스도 찍어 보고, 간장에 노른자를 푼 소스도 찍어 봤는데 저는 간장 노른자가 단연 최고였습니다.

오토바이가 늘어선 미딩의 좁은 골목과 한국어 간판
한국어 간판이 보이는 미딩 골목
쟁반 위 김치 · 나물 · 미역국과 은박지 위 냉동 삼겹살
화려하게 깔린 반찬과 냉동 삼겹살

냉면까지 55만 동

고기를 다 먹고 나니 입가심이 하고 싶어졌어요. 오이는 빼 달라고 부탁하고 냉면을 하나 시켰어요. 시원한 국물을 들이켜니 그제야 한 끼를 제대로 먹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계산서를 받아 보니 55만 동이 나왔어요. 그때 제 계산으로 우리 돈 29,400원이었습니다. 하노이 물가로는 큰돈이었지만, 일주일 넘게 기침에 시달린 몸에 주는 상이라 생각하기로 했어요.

양은 그릇에 담긴 냉면과 반찬 쟁반
마무리 냉면

베트남어 메뉴판 앞에서 고른 망고

식당을 나오니 하노이의 오후 더위가 기다리고 있었어요. 숨이 턱 막힐 만큼 습해서, 눈에 보이는 과일 음료 가게로 무작정 들어갔습니다. 문제는 메뉴판이 전부 베트남어라 무엇이 무엇인지 알아볼 수가 없었다는 거예요. 한참을 들여다보다가 결국 망고 하나를 시켰습니다.

나온 망고 음료는 우유 맛이 살짝 도는, 달고 시원한 맛이었어요. 한 모금에 더위가 싹 풀렸습니다. 벽에 하노이 골목 그림이 그려진 가게에 앉아 있으니 마침 바람까지 한 줄기 불어왔어요.

저녁 6시 반쯤이었죠. 망고 잔을 앞에 두고 있으니, 제가 왜 이 여행을 떠났는지 지난 일들이 하나둘 떠올랐어요. 첫 편 끝에서 차차 꺼내 보겠다고 미뤄 두었던 그 이야기를, 이제 해 보려고 합니다.

과일 음료 가게 카운터 위에 펼친 베트남어 메뉴판
알아볼 수 없던 베트남어 메뉴판

2018년, 공항에서 숨이 막혔다

저는 공황장애가 있습니다. 지금은 마음이 꽤 괜찮지만, 한때는 일상생활이 아예 안 될 만큼 힘들었어요.

처음 증상이 온 건 2018년이었습니다. 저는 음악을 전공했고, 그해 해외 공연을 가게 됐어요. 그런데 공항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숨이 쉬어지지 않았습니다. 물에 빠져서 숨을 참고 있는 것 같은 공포였어요. 그 뒤로 2018년부터 2021년까지는 사람을 만나는 것도 힘들었습니다. 빛이나 소리 같은 바깥 자극이 전부 스트레스로 밀려왔거든요.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코로나가 오면서 제 수입이던 공연 세션 일까지 끊겼습니다.

가장 무서웠던 건 아무도 도와줄 수 없다는 사실이었어요. 주변 사람들은 이 병이 얼마나 괴로운지 몰라서 어떻게 도와야 할지 몰랐고, 저는 죽을 것 같은 불안 속에 혼자였으니까요.

그때 저를 붙잡아 준 건 공황장애를 겪는 사람들이 모인 온라인 카페의 글 하나였어요. 임신한 분이 쓴 글이었는데, 약을 먹지 않던 때 마트에서 장을 보다 공황이 와서 쓰러졌다고 했습니다. 다행히 배가 앞으로 떨어지지 않아 아이는 무사했고, 그 하루를 감사하며 버텼다는 이야기였어요. 그 글을 읽고 처음으로 나만 아픈 게 아니구나 싶었습니다. 그 뒤로 교회에 다니며 말씀을 붙들었고, 공황이 내 삶을 막게 두지는 않겠다고 스스로에게 되뇌며 마음을 다잡았어요. 힘든 와중에도 여행을 떠나는 기안84를 보며 존경하는 마음이 든 것도 그 무렵입니다.

하노이 골목 벽화가 그려진 카페에서 망고 음료를 앞에 두고 앉은 모습
지난 일을 떠올리던 자리, 망고 음료 한 잔

파레트를 나르던 3년, 그리고 세계여행을 정한 이유

음악을 그만두고 쿠팡에서 일을 시작했어요. 계약직으로 들어가 관리자까지 3년을 일했습니다. 파레트를 나르는 일처럼 한 번도 해 본 적 없는 일을 하면서 돈을 모았어요. 저한테는 그 3년이 마음의 훈련이었고, 언젠가 떠나겠다는 꿈을 붙드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원래는 2025년 3월까지 일할 생각이었어요. 그런데 2024년 11월부터 증상이 다시 나빠졌고, 결국 12월쯤 퇴사를 했습니다. 그 뒤 한 달쯤은 집 밖으로 나가지 못했어요. 이러다 우울증까지 오겠다 싶어서 이를 악물고 밖으로 나갔고, 동네를 걷고 자주 가던 카페에 앉아 있는 것부터 다시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생각보다 일찍 여행을 준비하게 됐어요.

제가 고른 여행은 혼자 떠나는 세계여행이었습니다. 공황이 처음 찾아온 곳이 해외 공연을 가던 공항이었으니, 비행기를 타고 낯선 나라에 혼자 가는 건 저한테 가장 무서운 일이었어요. 그래서 오히려 해 보고 싶었죠. 가장 무서운 일을 이겨 보고 싶었고, 공황장애가 있어도 혼자 세계여행을 할 수 있다는 걸 제가 직접 보여 주고 싶었어요. 그리고 제가 떠나는 모습이 저처럼 아픈 누군가에게는 작은 힘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막상 혼자 떠나려니 나쁜 상상이 끝도 없이 이어졌어요. 혼자 잘할 수 있을까, 입국을 못 하면 어떡하지, 비행기 사고라도 나면. 그때 부모님 말씀은 길지 않았습니다. 「너가 하는 건 내가 무조건 응원할게.」 그리고 이렇게 덧붙이셨죠. 「엄마 아빠가 너의 인생을 책임져 주진 않아.」 제 인생은 제가 정하라는 말로 들렸어요. 그렇게 지지해 주신 덕분에 더는 망설이지 않았습니다.

같은 카페에서 고개를 돌린 모습
생각이 길어지던 저녁

두 달 치 약, 한 번

여행 중에도 불안이 아주 사라진 건 아니에요. 일주일 넘게 이어진 기침과 가래, 발가락에 생긴 고름 때문에 결핵은 아닐까, 발가락을 잘라야 하는 건 아닐까 혼자 겁을 먹기도 했습니다. 한인 병원에 다녀오고 나서야 많이 나아졌고요. 사람 없는 골목에 들어서면 지금도 바로 무서워져요.

그래도 제일 기쁜 게 하나 있어요. 공황장애 약은 원래 의사 선생님과 상의하며 매일 먹던 약이라, 얼마나 오래 있을지 몰라 두 달 치를 챙겨 왔어요. 선생님은 외국에 나가면 생각보다 좋아지는 사람이 많으니, 증상이 없으면 안 먹어도 괜찮다고 하셨거든요. 그런데 베트남에 도착한 날 딱 한 번 먹은 뒤로는 아직 먹을 일이 없었습니다.

저는 공황장애를 앓고 있습니다. 하지만 괜찮아요. 이 병이 얼마나 힘들고, 내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지 누구보다 잘 알아요. 그래도 바라보는 쪽을 조금 바꾸고 나니, 저한테는 생각만큼 무서운 병이 아니었다고 말하고 싶었어요. 떠나기 전에 마음먹은 대로, 공황장애가 있어도 혼자 세계여행을 할 수 있다는 걸 하노이에서 하루하루 보여 주고 있는 셈이죠. 제가 카페의 그 글 한 편에 위로받았던 것처럼, 이 일기가 누군가에게 작은 위로가 됐으면 해요.

지난 일을 한참 떠올리다 정신을 차려 보니 망고 음료가 다 녹아 있었어요. 그만큼 오래 앉아 있었던 거죠.

다 녹은 망고 음료를 빨대로 마시는 모습
정신을 차려 보니 다 녹아 있던 망고

말 대신 베이스

저녁 7시가 조금 넘어, 학교 후배가 추천해 준 술집으로 향했어요. 음악과 맥주가 있고, 손님 누구나 무대에 올라 연주할 수 있는 바라고 했습니다. 바는 서호라는 큰 호수 옆에 있었어요. 가는 길에 호숫가를 따라 걸으니 바람이 불어와 기분이 금세 좋아지더라고요. 그런데 난간 너머 물을 내려다보는 순간 저도 모르게 소리가 나왔어요. 「와, 물고기 죽었어.」 멀리서 볼 때와 달리, 가로등 불빛에 비친 물은 탁했고 죽은 물고기까지 보였습니다.

초록 난간을 따라 불빛이 비치는 밤 호숫가 길
바로 가는 길, 바람이 불던 호숫가
가로등 빛이 비친 탁한 호숫물 가장자리
가까이서 본 호숫물은… 꽤 탁했다

바는 양철 지붕 아래 무대가 있는 곳이었어요. 저도 쳐 보고 싶다고 말하고 무대에 놓인 베이스 기타를 잡아 보는데, 앰프에서 전기가 찌릿하게 올라와 깜짝 놀랐습니다. 케이블을 바꾸고 나서야 소리가 제대로 났어요. 화장실은 양철 벽 앞에 철제 소변기가 길게 이어진 모양이었는데, 어릴 때 고속도로 휴게소나 공중화장실에서 보던 바로 그 모양이라 옛 생각에 웃음이 났습니다. 냄새가 심하고 옆 사람이 훤히 보이는 구조라 무척 불편했거든요. 키가 작던 그때는 옆 사람 소변이 저한테 튀는 것만 같아 더 끔찍했고요.

저는 영어를 잘 못해요. 그래서 같이 칠 기타 친구, 드러머와 곡의 코드 진행, 그러니까 화음이 바뀌는 순서만 주고받고 나머지는 베이스로 대답했습니다. 두 사람이 금세 합을 맞춰 줬고, 처음 만난 사람들과 곡 하나를 끝까지 함께 쳤어요.

네온 야자수 간판 아래 무대에서 베이스 · 드럼 · 기타가 함께 연주하는 모습
처음 만난 사람들과 맞춘 합주
양철 벽 앞에 길게 놓인 철제 소변기
바 화장실, 어릴 때 휴게소에서 보던 그 모양

갑자기 시작된 랩, 그리고 종업원의 앙코르

중간에는 한 손님이 무대에 올라와 갑자기 랩을 시작했어요. 한 곡이 끝나자 제게 괜찮으면 한 곡 더 해도 되냐고 묻더라고요.

이제 가려고 일어서는데, 종업원 한 분이 갑자기 마이크를 잡았어요. 베트남 노래 한 곡이 앙코르처럼 바를 채웠습니다. 같이 연주한 기타 친구는 제가 나설 때 활짝 웃으며 반갑게 인사해 줬어요. 말은 거의 안 통했는데, 오늘 이곳에서는 그게 하나도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무대 가운데서 마이크를 잡고 랩을 하는 손님과 무대 옆에서 지켜보는 사람
갑자기 무대에 올라 랩을 한 친구
보라 · 초록 조명 아래 마이크 앞에서 노래하는 종업원
마지막 곡은 종업원의 베트남 노래
바 의자에 앉아 손을 흔들며 인사하는 기타 친구와 뒤쪽 바 풍경
가기 전에 반갑게 인사해 준 기타 친구

마감 직전 햄버거와 웰시코기

밤 11시가 넘으니 배가 고파졌어요. 그런데 그 시간에 문을 연 곳은 편의점 말고는 보이지 않더라고요. 겨우 찾은 햄버거 가게는 문을 닫기 직전이었는데, 직원들이 그래도 주문을 받아 줬어요.

햄버거 세트는 25만 9,500동, 그때 제 계산으로 13,840원이었고요. 가게에는 웰시코기 한 마리가 어슬렁거리고 있었어요. 마감 시간에 음식을 팔아 준 직원들한테 고맙다고 인사하고, 깨끗이 다 먹었습니다. 가게 분위기가 예뻐서 다음에는 일찍 와야겠다 싶었어요.

가게 앞 바닥을 걸어가는 웰시코기
마감 직전 가게에서 만난 웰시코기
빨간 체크무늬 종이를 깐 쟁반 위 햄버거와 감자튀김
밤 11시가 넘어 겨우 받은 햄버거 세트

그날 밤의 마음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밤 호수를 다시 봤어요. 잔잔하고 바람도 시원했습니다. 오랜만에 밖에서 정말 재밌게 하루를 보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말이 통하지 않아도 음악으로는 통할 수 있다는 걸 오늘 확인했죠. 그리고 고마운 사람이 참 많은 하루였어요. 기침 소리에 죽을 끓여 주신 아주머니, 처음 보는 저와 합을 맞춰 준 연주자들, 문 닫을 시간에 햄버거를 팔아 준 직원들까지. 그 덕분에 제가 여행을 시작한 이유를 떠올린 날이 따뜻한 날로 남았습니다.

건너편 불빛이 늘어선 어두운 밤 호수
돌아가는 길에 본 밤 호수

지금 다시 간다면

그 숙소 아주머니께 제대로 인사를 드리고 싶어요. 그때는 고맙다는 말 한마디가 전부였거든요. 기침에 시달리던 여행자에게 그 죽 한 그릇이 얼마나 큰 힘이 됐는지, 이번에는 제대로 전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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